뒤늦은 이벤트, 나의 라떼 이야기

원래 4월 말일까지이긴 한데, 써놓고 마감하고 문득 눈을 떠보니 5월이 되었군요.

이벤트 참가는 어렵겠으나 그냥 써둔 거니까 올려봅니다.

=======================================================================

많은 분들이 후기글로 라떼를 맛있게 타 드시길래 저도 라떼를 한 잔 타보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첫 일감을 기억하고 계신가요?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10년 전,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다가 자취방에서 ‘한국에 가면 뭐 먹고 살지’하고 바닥을 뒹굴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왕이면 일본어 좀 배웠으니 어쩐지 멋있어 보이는 번역가를 해보자, 라고 결심했지요. 여기서 웃음 포인트는, ‘일본어 좀 배웠으니’의 레벨이 꽤 어설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어설픈 레벨이었다는 거죠.

여튼 그래서, 그 자리에서 번역가 되는 법을 서칭했습니다. 대충, ‘번역업체에 이력서를 보내서 번역가로 등록하고 일감을 받는다’라는 시스템을 알아냈죠. 그래서 이력서를 보냈고, 번역가로 등록이 됐고, 의뢰 한 건이 들어왔는데 그게 저의 첫 번역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 회사와는 인연이 끊겼습니다.

그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떻게 하면 집에서 붙어먹는 번역가가 될 수 있을까를 고심했죠. 그러던 차에 여기의 대표이신 임윤 님의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임윤님의 블로그에는 번역 이야기가 거의 없었고, 피부 필링과 트레티노인에 대한 정보만 한가득했습니다. 종종 직업이 번역가라는 짧은 이야기만 올라왔어요. 그런데 계속 관찰해보니 이 사람이 돈을 꽤 잘 버는 거 같은 거예요. 물론 이 사람은 영어하고 일본어를 둘 다 하고 나는 일본어만 하니까...라고 감안을 해도, 일본어로 유명한 게임 타이틀을 번역하고 그러더라고요. 당시 저는 타이핑 알바와 소규모 번역일을 하면서, ‘아 뭔가 큰 게임 타이틀을 번역하거나 전문적인 번역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뭐 그런 게 있을 거 같은데...........’ 라고 생각을 했죠. 지금은 그 생각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걸 알지만...

어쨌든 그러다가 임윤 님의 피부 박피글(a.k.a 필링)에 어느 날 제가 댓글을 달았던 거 같아요. 댓글 내용을 요약하자면, <저도 얼굴 각질을 제거해보고 싶네요>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아는 친구한테도 “님도 보고 나도 보는 블로그의 유명한 박피 박사한테 댓글을 달았습니다"라고 하니까, "어머 우리 집 오라고 해서 같이 얼굴을 어떻게 해보죠”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임윤 님이 마침 서울에 올라온다는 거예요? 친구네 집에 와준대요? 그렇게 해서 친구와 저와 임윤 님은 첫 만남부터 쌩얼로 친구네 집에서 피부의 각질을 벗겨냈고... 그것이 첫 만남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임윤 님한테 치대기 시작했어요. 님이 번역일을 좀 하는 거 같은데 나도 번역일을 한다, 근데 보아하니 느낌상 님은 좀 대단한 타이틀 맡은 거 같구 돈도 잘 버는 거 같은데 그거 어떻게 하냐. 당연히 번역실미도, 한산번 없었구 주황 책은 무슨 텍스트로 정리된 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많이 착해진 순한 양이 되었지만, 예전부터 보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임윤 님이 포스가 장난 아니잖아요? 포스도 장난 아니고 어쩐지 화나게 만들면 안 될 거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업계에서 잘나가는 돈 잘 버는 사람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이걸 활용 안 하면 금광을 눈앞에 두고도 안 캐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어쨌든 저는 심심할 때마다 임윤 님을 탈탈 털어서 콩고물을 주워 먹었습니다. 번역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서 영업을 돌린다는 굵직한 흐름은 당시의 저도 이미 아는 바였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임윤 님과 저의 수주량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은 어떤 식으로 영업을 하고 PM을 구워삶으며 번역을 어떻게 하길래 그게 가능하냐’라고 임윤 님을 탈탈 털었습니다. 여러분은 임윤 님한테 질문하면 정제된 문장으로 답변이라도 해주지 제가 물어보면 첫 마디가 ‘졸려’ 일 때가 95%..........

처음 트라도스를 배울 때가 생각나는군여. 임윤 님은 친절하지 않았어요. TM에 번역이 저장된다는 건 알려줬지만, TM이 파일 형태로 존재한다는 건 알려주지 않아서 제가 ‘그럼 TM은 어디에 존재하는 거야?’라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임윤 님은 답변 안 해줬던 걸로 기억하고 ^^...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냥 제가 바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저는 임윤님을 탈곡기처럼 맨날 털었습니다. 맨날 카톡으로 뭔 괴상한 게 왔다며, 난 이런 거 모른다며 이거 어떻게 하냐며 칭얼댔어요. 그런 임윤 님은 저에게 일관되게 말했져. “님은 번역을 못한다.”그렇게 저는 몇 년에 걸쳐 번역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번역도 못하고 한국말도 못하고.... 하지만 뭐 임윤 님한테 욕먹고 잔소리 듣는 건 그닥 안 중요했어요.

솔직히 제 목표는 크지 않습니다. 만약에 100억 부자가 있다고 칩시다. 저는 그 부자를 쫓아다니면서 2~3억만 벌어보자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냥 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예쁜 접시 사서 인스타 샷 찍고 카페 다니고 데이트하고 집에서 일하고 그러구 있어요. 어쩌다가 나대고 싶을 땐 아주 가끔 강의도 하구 책도 몇권 그냥 끄적여보고...... 그리고 때때로 들어오는 독자님들의 메일에 답장도 해드리구............. 이상하네, 저 지난 한 달간 프로젝트 n0만자 처리하면서 진짜 힘들었는데 왜 이렇게 쓰니까 여유로워 보이져...? 가끔 백수 시기가 있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참... 그리워요...

 

 

어쨌든 가끔씩 임윤 님이 하산하라는 소리를 씨부릴 때마다 무시하며 저는 여태... 요러고 있습니다. 아직도 임윤 님은 털어먹을 게 많아 보이거든요. 그러니, 임윤 님이 개과천선(?)하여 열심히 교재도 만들고 커리큘럼도 짜고 아주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는 한산번을 여러분들도 탈탈 털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임윤 님의 생각과 다른 부분들도 생겨나긴 하는데, 그건 어쨌든 일을 많이 하게 된 이후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컨텐츠를 잘 활용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좋은 서비스를 착실히 따라 하며 이행하시되 약삭빠르고 현명하게 잘 이용하셔서 번역 라이프 지속하시기를... 집 좋아하시는 분들이 집에서 계속 붙어있을 수 있기를......
ABC 호린 호린 · 2022-05-06 12:48 · 조회 3779
전체 1

  • 2022-05-08 20:14

    번역을 직업으로 삼아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호린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게 되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체게시글 1,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