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로동만이 살길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연말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카드값은 누적 2천이 찍힌 지 오래이며 카드사에서는 한도 증액 필요하쉰? 하고 연락이 오는데 필사적으로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긴축 재정하며 긴축한 만큼 일을 해서 내년에는 카드사 노예로 살지 않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여기 포럼에 계신 분들 올 한 해 카드값 무사하셨는지요...?

 

저는 올해 잔고가 0원입니다. 향수와 화장품, 명품 가방들로 방이 가득 채워졌지만 정작 화장품들은 신난 직원의 샘플 공세로 아직 본품은 뜯지도 못할 정도이며(아무리 봐도 샘플들이 저 자는 동안 새끼를 치는 것 같습니다) 명품백들은 올 한 해 열 번이나 들었나 모르겠으며(남들은 신주단지 모시듯 모신다는데 저는 개판으로 던져놔도 들고 나갈 일이 없으니 흠집 하나 없습니다) 유일한 취미가 자기 전에 침구에 향수 뿌리기였는데 그마저도 이제 귀찮아서 먼지만 쌓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뭘 위해 돈을 벌었나 싶은 생각만 듭니다... 지금도 카드사에서 '이번 달 카드값이 부담되시나요?^^'하는 알림이 뜨네요. 카드를 잘라버리든가 해야지 정말

 

홀리데이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피엠이 '홀리데이 시즌에 계획 있으신가용?'하고 메일을 보내서 '저는 계획 같은 거 없고요 일이나 주십쇼'하고 답장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냅다 20K 프로젝트를 던지고 휴가를 가버렸습니다. 빈말이었는데 이 미국놈들은 농담 같은 거 모르나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쉬고 싶은 마음 당연히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그 덕에 연말 내내 하루에 4K씩 꾸준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걸 지금 안하면 이달 말에 하루에 10K 씩 하고 일주일을 앓아 누워야 하니 지금 미리미리 해둬야 사람답게 연말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받으면 되는 일을 받아놨으니 방법이 없네요. 울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돈을 덜 썼으면 쉴 수 있었을 텐데... 왜 돈을 써가지고... 일을 해도 일하는 기분이 안 듭니다... 이거 다 다음 달 카드값으로 회수해간다 생각하면 영끌해서 집 사고 매 달 이자로 월급 차압당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 기분인가 싶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그것은 바로 '꾸준한 로동으로 돈 쓸 시간을 줄여버리자'입니다... 저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한 달에 딱 3000 딸라만 벌자. 그 이상은 과로이며 불필요한 로동이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팔자 좋게 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점점 일을 해치우는 속도가 빨라지니 쉬는 시간에 백화점에 가지 뭡니까? 백화점에 가서 양 손이 무겁게 돌아오니 3천 딸라로는 택도 없는 카드값이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턴 일은 콤팩트하게, 쇼핑은 러프하게 즐기는 이상한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소득과 정비례하게 소비액은 늘어나고... 직원이랑 두 시간씩 앉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어머 이거 예쁘네요'하면 쇼핑백에 담고(산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이미 결제되어있음) '이거 얼마에요?'하면 '별로 안 비싸요 200 정도^^?'하는 경제개념 박살난 짓도 하고... 그러고나니 이렇게 누더기가 된 제가 연말에 떨렁 내던져있었습니다...

 

여러분... 저를 타산지석 삼아 2023년은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저는... 저는 이대로는 못 살겠습니다... 내년에는 꼭 사람답게 살기로 결심해 봅니다... 제가 이렇게 멍청한 짓으로 한 해를 날려먹었으니 여러분은 저 같이 살지 마세요... 그냥 많이 벌어서 적당히 쓰고 적당히 행복하게 연말을 풍요롭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제발...

 

그럼 저는 다시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한참 남았네요...
ABC K K · 2022-12-27 20:49 · 조회 1437
전체 7

  • 2022-12-27 21:47

    저는 이제 막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부러워서 이 글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고 있어요..!! 바쁘시겠지만 건강 잘 챙기시고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2022-12-27 21:53

    아 일 너무하기싫다


  • 2022-12-28 19:26

    저도 코트를 사재꼈는데 정작 입고나갈 곳은 없고... K님처럼 꾸준히 로동하지도 않아서 울면서 마감하고 있읍니다.. 내년 제 목표는 K님처럼 미리미리 일을 해두고 올해처럼 마감으로 사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어렵네요. 올 한해 풍요로운 달러로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는 더 적은 로동과 더 많은 달러 기원드립니다


  • 2022-12-29 00:42

    저는 이제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K님이 쓰신 글이 제 미래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고되실테지만 저같은 쪼무래기는 그저 부러울따름입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 2022-12-29 14:06

    아아.. 돈벌기도 전에 쓰는 자도 있는데 돈벌면서 쓰는 삶 부럽습니다!! 제가 돈벌면 돈이 모이는게 아니라 돈쓰는 스케일만 커질거 같다 상상하곤 했는데... '꾸준한 로동으로 돈 쓸 시간을 줄이자'는 현명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적용해보도록 노력해야겠어요..부디 모두 언젠가는 꼭 카드사의 굴레에서 벗어날수있길..!


  • 2022-12-30 17:53

    Happy holiday!라는 인삿말이랑 6.2k 리뷰 PO가 어떻게 하나의 메일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일하기 싫어서 온몸을 뒤틀고 있는 자에게 참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2022년이 KST 기준 대략 30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ㅠㅠㅠ 새해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 적당히 쓰는 라이프를 목표로 삼겠읍니다


  • 2023-01-03 05:07

    와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저도 언젠가는 이렇게 열심히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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