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이트 글 재업) 한국 번역회사 생존기 7 - 간만의 징징글: 퇴근시켜주세요

안녕하십니까 대원님들, 미세먼지가 인류를 멸종시키는게 먼저일지 제가 칼퇴하는 날이 오는게 먼저일지 궁금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국 번역회사의 프로야근러입니다.


오늘은... 잠깐 팝콘 챙기셨나요? 우선 챙겨오세요.
오늘은 징징글 쓰러 왔어요(당당)
번역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렇게 다이나믹한 것인지는 몰랐는데, 에피소드가 막 생기네요 허허허허 계속 연재하란 뜻인가 봅니다.
분명 회사는 계속해서 다녔는데... 번역회사는 다른 의미로 어나더 레벨이군요.


이번 에피에 고구마는 없고요 그냥 슬슬 넘어가는 이유식 텍스처의 글입니다.


소소한 에피소드 1: PM이 자꾸만 잡담을 걸어온다


LL과 PM 중 어느 쪽이 더 높은 직급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월급을 누가 더 받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번역회사가 전부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극 여초라서 서열이 딱 나눠져있지는 않고 보이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이 희미하게 있는데...

(남초 회사의 경우 윗 서열은 알!!!파!!! 아래 서열은 쭈굴,, 하게 서열이 확실하게 보이더군요.)

특히, 이 두 역할 중에는 서열이 눈에 띄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둘이 보통 친하기 때문에 더 서로 격의 없이 대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프로젝트를 맡았든 아니든, 주로 클라이언트 욕을 하면서 친해지니까요. 회사원이란 다 그렇지만요.



그래서 PM이 바쁠 때 자꾸만 잡담을 걸어옵니다. 아니 님도 바쁘시잖아요;; 제일 바쁘신 분이...

실미도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아닙니다만 회사에서 저는 프로페샤날한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업무 중에는 "ㅠㅠ ㅜㅜ 🙂 ... ^^ ~~~;;;;???!!!"따위 기호를 쓰지 않는 것이 철칙인데

저보다 훨씬 연차가 높으신 분이 메신저로 "않이 우리 고갱님 자꾸 웨저레ㅠㅠ!! 아 진쨔 우리가 지들 시다바리냐ㅠㅠㅠㅠ! 웃껴 진짜!!" 같은 메시지를 보내오시니

저도 "그러게요 왜 저럴까요. 이해가 안 되는 고객님이십니다."라고 무뚝뚝하게 보낼 수가 없어서 간간이 저런 기호를 써가며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프로페샤날 이미지 뭉개지는건 싫어서 적당히 스루하고 있고요.

대학 졸업 후부터 쭉 직장인입니다만 여전히 사회 생활 참 어렵네요.


소소한 에피소드 2: 고갱님도 진상인데 해외 작업자도 진상인 경우=너의 퇴근 시간은 갔어 돌아오지 않아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금방 깨달은 것이 있어요. 다른 고갱님은 정상인데 우리 고갱님이 유난히 장인정신 담당이고...넷상이니 톡 까놓고 말하자면 진상입니다.


저희는 영미권이나 아시아 외의 다른 나라 언어를 한국어->영어->제2외국어 순으로 중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느낌이 아니야! 다시! 다시!!!" 하면서 이 중역의 영어 소스를 '납품 후에' '무료로' 다시 해오라는 세그먼트가 매주 발생합니다. 영어도 수정하고 그 외 다국어도 전부 수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예요. 그리고 그 외 다국어 가짓수는 한 손에 다 꼽아지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대 삽질 이벤트 발생이예요.


그런 개로운 이벤트가 왜 그렇게 자주 발생하냐면 딱히 저희 쪽 작업자가 잘못한 건 아니고...(필터 실패) 지들이 소스를 개발괴발 써와서 그래요.

알아먹기 힘들게 쓴 소스를(누군가 저분들께 '너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책을 선물해달라) '그런 뜻이 아니니까 이렇게 고쳐줘'라며 얹어주거나 '아 이 표현 별로였네. 고쳐왔으니까 저렇게 고쳐줘'라며 얹어주는 식으로 납품 후 계속해서 수정 사항이 발생해요.


안 그래도 바쁜 게임 프로젝트인데, 저렇게 수정 사항도 많이 발생하니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 모두의 정시 퇴근이 요원해진 상황. 고갱님도 퇴근 못해요. 꼬수워라.

그러나 본인들의 소스 개발괴발 이슈는 고칠 생각이 없으니 그냥 맞춰드려야 하는 상황이죠. 쒸익쒸익.


거기다가 지난달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분명 오늘 퇴근 땡하기 전에 '고갱님에게' 납품하기로 되어있는 파일을 해외에 있는 작업자가 '저희에게' 아직 보내주지 않은 것이예요.

저희에게 납품하면 얼른 1.검사 돌려보고 2.파일 형식 맞추는 작업을 거친 후, 3.저희 쪽 TM을 업데이트한 뒤 4.고갱님에게 토스해야 하는데, 지금 시간은 오후 7시예요. 그리고 저희 표준 퇴근 시간은 아무리 늦어도 오후 7시입니다 ^q^...


이분은 결국 '아 쫌 늦어버렸네 껄껄 미안 여기 파일!'하면서 그날 저녁 8시 반쯤 파일을 주었구요. 저희는 9시 퇴근했습니다.

시차가 있다는 걸 고려해도 아무 말도 없이 납기시간으로부터 6시간이나 늦어놓고 너무 해맑은 태도였습니다. 화내는 사람이 바보로 보일만큼ㅎㅎ


그날은 왠지 도전과제를 하나 뿌순 느낌이었어요.
<System: 도전과제를 달성하였습니다. "한국 번역회사에서 12시간 일하기">
근데 보상이 체력 디버프야...


사실은 더 재밌는 에피가 많은데 아무래도 그 에피를 재밌자고 마구 올렸다간 특정성 성립으로 셀털하다가 해고당하거나 오프에서 아는 사람이 "여어 비욘드 히사시부리~" 하면서 나타난다는 괴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자제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생존기에서 뵙겠습니다.

번역가 beyond beyond · 2019-04-10 10:18 · 조회 6663
전체 1

  • 2019-12-16 13:04

    ㅋㅋㅋ잼써요. 비욘드님은 고생하시는뎅 ㅋㅋ전 왜이렇게 재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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