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하려다간 죽도 밥도 안 되죠.

제목은 제가 작년 7월 이뮨님 수업 들으러 서울 갔을 때 뭐 딱히 저를 겨냥하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겠지만 가슴에 콕 박혀서 제목으로 써 보았습니다. -_-;

 

그즈음 저는 왜 맨날 나는 몇 만원짜리에서 몇 천원짜리 일만 오냐 광광 울고 있었고 (이제 생각해 보니 처 울 시간에 영업을 했으면 단가 협상할 때 좀 더 배짱을 부렸을 텐데...) 일 쪼끔 하고 영업 깔짝대보다가 아이고 힘들어 못하겠다 엎어지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저 밑에 리플에 할 만하면 할 것이다 라고 질러놨으나 진짜 지금도 미스테리합니다. 말 그대로 이력서 업데이트 -> 뿌린다가 끝인데 왜 이렇게 영업은 힘이 들까요? (....)

시작하기 전부터 너무 많은 생각이 앞서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저 역시 뭔가 정하기 전에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고(주로 이 단계에서 아 난 못할거야 도망가거나 엎어집니다.), 망하는 수준마저 내가 감당할 만하다가 되어야 겨우 발걸음을 떼는 타입입니다. 번역에 도전할 무렵 저는 나이가 애매해서 이젠 어디에 이력서를 뿌려도 연락이 안 오거나 연락이 와서 들어가도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관리(거 이상하게 나이가 있으면 알아서 밑의 사람을 후려 잡을 것을 기대하더군요.)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라 번역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니 뭐 망해본들 크게 밑질 것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책이 도착해서 감격에 겨워 이제 1년차에 주접 떨면서 리뷰를 남겼으나(!) 제가 이뮨님께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경제적인 독립을 향한 가능성을 주셨다는 겁니다. ㅠ_ ㅠ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제한되어 있고 딱히 전문직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교적인 성격도 못 되고 나이 들면 폐지 줍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어? 이 정도 원문이면 나도 할 수는 있겠는데? 어? 이걸로 진짜 돈벌이가 되네?하고 걸어가니 정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겁니다.

아직 요령도 없고 작은 내용 붙들고 효율 떨어지게 몇 시간 염병하는 건 똑같지만 그렇게 삽질을 해도 일단 돈은 벌고 있고 이대로 쭉 나가면 되겠다라는 것이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 물론 이 길이 그냥 단순한 꽃길은 아닙니다. 맨날 이메일 확인한다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호떡 굽는다고 긴장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버틸 만합니다.

책 나오고 리뷰 쓰고 나니 또 이런 저런 생각이 휘몰아쳐서 혼자서 생각이 많아지네요. 지금도 가끔씩 신기합니다. 어라. 내가 번역으로 진짜 돈을 벌고 있네? 싶어서요.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그날까지..오늘도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

 

 

 

 

 

 
무료회원 blueundine blueundine · 2019-04-12 15:33 · 조회 4447
전체 16

  • 2019-04-12 16:22

    소반의 보람이 있어 저는 뿌듯합미다...!


    • 2019-04-12 16:36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엄한 방향으로 삽 푸던 중생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_ㅠ


  • 2019-04-12 17:16

    헐 맞아요 망하는 수준마저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움직이는!!! 참 근데 망해봐야 그냥 안 될 뿐이고 뭔가 피해를 보는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망할 걱정 할 시간에 뭐라도 해야지 이 미련한 나새끼ㅠㅠ 저도 이제 지박령 고만 하고 정진하러 총총..(과연


    • 2019-04-12 17:26

      애매한 완벽주의자들은 오늘도 셀프 지옥 속에서 곳통받습니다. 그래도 막상 시작하면 또 꼼꼼하다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니 우리 같이 힘내요. +_+


  • 2019-04-12 18:07

    꼼꼼함 조금만 나눠받고 싶네요! 자기 합리화 잔뜩 하면서 헐렁하게 살아왔는데 번역 처음 시작할 때 언어보다 꼼꼼함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답니다.


    • 2019-04-12 20:02

      저는 쓸데없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좀 덤덤해지고 싶네요 쫌만 신경 쓰면 잠 못 자고 소화 안 되고 ㅠㅠ


  • 2019-04-12 21:21

    저도 쓸데없이 고민이 많은 타입이라 격하게 공감이 가네요ㅠㅠ
    완벽하게 하려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는 걸 가슴 속 깊이 새기고 오늘도 셀프 빻음의 길로 걸어감미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한 해 되십시오!: )


    • 2019-04-14 12:22

      그렇져. 시작 전에 너무 생각이 앞서서 매일 시작 단계에서 엎어지는 애매한 완벽주의자는 오늘도 웁니다. Meow님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 2019-04-12 23:03

    오늘 정말 피와 살이 되는 글이 많이 올라오네요.. 정영한 선생님 강의를 재개하고 정신을 다잡자 다짐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저도 얼른 ‘내가 번역으로 돈을 벌고 있네?’ 할 날이 오도록 정진하겠습니다. 글 감사해요!!!!!


    • 2019-04-14 12:51

      금방 될 겁니다. 에브리데이 마감데이가 되는 그날까지! (윗 인스타그램 만화 보고 한번 써본 ㅋㅋㅋ)


  • 2019-04-13 06:04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번역으로 돈을 벌기 시작 할 날을 위해!!@


    • 2019-04-14 12:22

      멀지 않았습니다! 화이팅!


  • 2019-04-13 15:43

    만성 소화장애 여기도 있습......(훌쩍)... 하다보면 스트레스 관리하는 요령도 더 생기겠죠!!?!


    • 2019-04-14 12:23

      최근에는 일 안하고 그냥 드러누워 있으면 위장이 파업해서 뭘 먹지도 못하겠습...(엉엉) 스트레스 관리하려면 운동을 해라 이러는데 운동은 너무 싫고 너무나 고민입니다. 운동 말고 스트레스 관리법은 없는 것일까요. (...)


  • 2019-04-13 15:58

    하 알게모르게 위안받고 갑니다.. 고맙습니다ㅠ_ㅠ


    • 2019-04-14 12:24

      위안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사람이랑 교류가 없다는 게 편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일만 하다 보면 외따로 떨어진 섬 같단 느낌이 종종 들거든요. 그래도 번역 실미도가 있어서 근근히 버텨내는 거 같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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