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첫 문턱을 넘고 있는 초보의 후기 (가입 여부를 고민하는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저는 현재 직장(영어랑 상관없음)과 병행하며 산업번역에 도전하고 있으며 나이는 40대 중반입니다.

사실 번역일이 내 평생의 꿈이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사람과 직접 만나지 않고 집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그런 저의 요구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산업번역이었고요.

아직 성공한 산업번역가가 된 건 아니지만, 이제 진입을 시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산번 유료가입은 2019년 7월에 했습니다.

첫해는 영어 문법 공부(당시에는 정 박사님) 강의를 들으며 처음 몇 개월 정도 기초공부를 하다가 집안에 사건·사고가 터져서 그것만 해도 너무 괴로운 나머지 도저히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탈주해버렸습니다.

두 번째 해는 '아... 하긴 해야 하는데….'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거의 통으로 날리다가 막판에 겨우 마음이 잡혀서 성문기초와 그 외에 함께 권해주신 교재들을 드디어 제대로 각 잡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영어와 관련된 배경 없이 도전하는 저에게 가장 큰 벽은 이력서 작성이었어요. 그 흔한 토익도 안 쳐봤기에 정말 영어에 대해서는 적을 게 없었거든요.

"이력서 작성을 회피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는" 그런 심리상태였습니다.

한산번에서 권해준 공부 책들은 다 사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외에도 EBS의 다른 인터넷 강의들도 듣고, 공부 잘한다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무슨 책을 보나 이런 것도 검색해서 몇 권 따라서 사보기도 하고, 좀 자세한 문법 설명을 알고 싶어서 뭐 크게 다를 거 있겠어 하면서 별 생각 없이 30여 년 전에 출판된 3권짜리 종합문법책을 덜컥 샀다가 한자가 한가득 적혀 있어서 좌절하기도 하고(예문 해석이 '문을 녹크하였다. 온 사람은 죤과 메아리였다.' 의 충격;) 그 외 기타 등등.

그렇게 첫 번째 연장 결제를 하게 됩니다.

여전히 이력서 작성 회피용 공부를 하는데 공부를 그 기간 내내 쭉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어요.

직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간 조절을 해서 오후 근무만 하는 거로 맞춰 놓긴 했지만(출근 준비와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에 6시간 반 정도는 직장에 할애하는 시간), 낮에 일하고 밤과 오전에 공부하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한 2주 정도 계획대로 공부 좀 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앓아누워서 3주는 기력 없이 지내기를 반복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대로는 돈 아까워서 안 되겠다'라고 강렬한 의지를 심어준 것은 두 번째 연장 결제였습니다.

되든 안 되든 이력서는 무조건 쓴다는 마음으로 이력서 샘플 파일을 열어서 어떻게든 채워 넣고, 드디어 2022년 2월에 첫 이력서 리뷰 신청 글을 작성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력서 첨삭 끝에 한 페이지 안에 쏙- 들어가는 단출한 이력서를 손에 쥐게 되었고, 저도 드디어 업체에 지원 메일을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보고 나면 "아니 그러면 이 사람은 한산번에 등록해서 이력서 하나 만든 것 말고는 대체 무슨 혜택을 받은 거란 말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이제부터 제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2년 등록 기간에는 교재(당시에는 2권짜리)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며 프로즈 유료등록을 하였고, 그 외에 이메일 만들기라던지 자잘한 준비를 이때 했으며, 트라도스도 구매했습니다.

프로즈 유료등록을 하고도 처음 2년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유료등록한 지 2년 몇 개월 정도 지나니까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제 프로즈 프로필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등록한 분야에 관련된 프로즈 잡메일이 수신되는 빈도가 잦아졌으며, 저를 특정해서 '네가 등록한 분야에 관련된 일이 있는데 혹시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메일이 두 번 왔었는데 첫 번째는 이력서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사양했지만 두 번째는 당당하게 이력서를 들이밀며 하겠다고 답장을 했고 그렇게 저의 소중한 첫 호떡(이자 아직 유일한 호떡;)이 생겼습니다.

 

2년 + 연장결제 2회차 기간 동안(탈주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력서를 쓰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한산번의 질문 게시판을 보면서 현장에서 어떤 내용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생기는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력서 작성하기라는 대업을 끝낸 뒤, 그 다음 벽은 업체에 지원하고 샘플테스트를 받고 계약서를 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산번의 질문 게시판은 저를 인도하는 빛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계약서를 쓸 때 빈칸에 뭘 적을지도 모르겠고 내 이름을 오른쪽에 적을지 왼쪽에 적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유능하고 능숙하게 보이는 계약서를 작성하긴 해야겠고 구글 검색을 해봐도 막연할 때, 맞춤형으로 시원하게 정답을 알려주는 한산번의 질문 게시판 덕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도장이 필요할 경우, 저는 도장을 종이에 찍어서 스캔하려면 인주가 있어야 하는데 집에 인주가 있나? 없는데? 편의점에 인주를 파나?? 하면서 별 기대 없이 물어봤는데, 도장 이미지를 디지털로 해결할 수 있는 사이트를 깔끔하게 알려주셨습니다(심지어 인주가 없으면 립스틱을 사용하면 된다는 리빙팁까지 얻음).

그 외에 별 생각 없이 내가 저지르려고 했던 행동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도 한산번의 질문 게시판이었고요.

 

리뷰게시판은 샘플테스트 리뷰의 첨삭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를 나의 분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게임 번역을 하면 왠지 덕업일치의 꿀을 빨 것만 같은 환상을 가지고 게임 번역 샘플을 요청해서 해보았는데, 뭔가 제 생각하고는 상당히 다르더군요. 게임은 그냥 취미로 살려 놓기로 했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해당 분야의 샘플번역을 하고 싶다고 리뷰게시판에 신청하시면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현재 이력서를 보낸 업체는 21개이며 이 중에 NDA 작성한 곳은 네 군데입니다.

저는 하루에 이력서 2개 보내는 것도 힘들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1개밖에 못 보내기도 합니다.

일단 당분간은 하루에 최소 1개를 보내는 게 목표이긴 한데, 낮에 직장에서 시달리면 몸이 아플까 봐 2~3일은 그냥 손을 놓아버리기도 하는 그런 속도로 이력서를 뿌리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산업번역을 고려하면서 한산번 가입을 할까 말까 계속 고민 중이시다면, 유의미한 정보를 처음부터 손에 쥐고 일단 씨앗을 뿌려놓고 공부를 시작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처음에 영어 공부 좀 해놓고 가입해야지 하면서 이리저리 들쑤시며 망설였던 기간이 결과적으로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면서 시간만 아깝게 흘려보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가입했는데 산업번역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더 이상 이 길은 내 인생에서 고려하지 않는 길이니 미련 없이 다른 길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도와주므로 그 또한 시간 절약의 다른 형태라고 봅니다.

가입 기간이 2년이니까, 가입해서 초반에 여러 세팅을 미리 해두고 효율적으로 필요한 공부를 우선적으로 하면서 산업번역 도전을 진행하시면 좋겠다는 것이 제 후기의 결론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윈도우 11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는데 아직 설치 중 91%네요. 무사히 설치가 끝나길.)
ABC 민트색 민트색 · 2022-04-18 02:42 · 조회 2019
전체 5

  • 2022-04-18 12:39

    결말: 윈도우11은 잘 설치가 되었는데 뜬금없이 노트북 모니터가 고장나서 LCD교체 수리를 맡기는 엔딩...ㅜㅜ
    2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 2022-04-18 19:56

    딴 소리지만 민트색님 질게에 올리는 질문들이 다 초보인 저에게도 너무 도움이 되는 것들이어서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2-04-18 21:19

      올해에는 우리 꼭 자리 잡아 봅시다.


  • 2023-07-07 22:45

    아.. 고민 중인 제게 가장 와닿는 후기에요. ^^


  • 2023-09-10 14:48

    저 글을 적은 시점에서 1년 4개월 정도 지난 지금의 상황을 업데이트 하자면, 이력서를 980개 정도 보냈더니 몇 군데서 짤막한 일감을 두어 번 주었지만 유의미한 수입은 없다가, 올해 5월 중순에 한 국내업체에서 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업체 한 곳에서 최대 월 매출 300만원까지 올려봤고, 보통은 여기서 월 150안팎의 일감을 받는 것 같아요. 이런 곳 딱 한 군데만 더 뚫으면 좋겠네요.
    요즘은 다시 이력서를 돌려볼까 어쩔까 고민하면서, 들어오는 일을 하고 사외대 강의를 들으며(+트라도스 및 컴퓨터 프로그램 스킬을 익히려고 생각만;;) 지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돈도 싫으니 이제 일 그만 받고 싶다고 글 올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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