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도스스튜디오 레벨 1 후기 + 질문

 

즐거운 연휴 보내셨나요?

너무 제 글로 도배하는 것 같아서 글을 쓸지 말지 고민했는데 이렇게라도 자극을 줘야 움직이는 인간이다 보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또 글을 올려봅니다.

 

저는 이번 연휴에 미루고 미루던 트라도스 스튜디오 레벨 1 자격증을 땄습니다. 자격시험은 임윤 님과 다른 회원들의 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한 번에 땄다면 후기를 쓸 일이 없기에 저의 실패 기록도 같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라도스 스튜디오를 결제하면 레벨 1 시험 자격을 서비스로 넣어줍니다. 세 번 시험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국가 자격시험 도전 중독자입니다. 도피성으로 이것저것 신청한 후 객관식인 1차 합격 후, 실기나 주관식 시험으로 시행되는 2차를 포기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문제의 인간입니다. 그리고 1차 객관식 시험은 절대평가 + 문제은행식 출제로 기출 5개년 정도만 마르고 닳도록 보면 합격하는 시험이지요. 트라도스 레벨 1도 시험 기회도 세 번이나 있겠다 일단 문제를 보겠다고 무턱대고 응시했습니다. 이때 한산번 책을 두 번 정도 설렁설렁 읽어 본 상태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응시는… 접속하자마자 시간제한 10분이 뜨고 모니터 가득 문제가 뜨는데 당연하지만 영어! 그때부터 당황해서 흰 것은 글씨고 검은 것은 화면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이 나갔다는 뜻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리석게도 문제를 찬찬히 훑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창을 닫았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기회가 날아갔습니다.

 

두 번째 응시에 도전하기 위해서 워크북을 출력했습니다. 인터페이스 챕터만 다섯 번은 본 것 같습니다. 마침 그 때 임윤 님께서 이력서 첨삭을 다시 여실 예정이라는 꿈같은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렇게 명절 연휴가 시작되었지요. 나름 워크북을 읽는다고 읽었지만 역시나 자꾸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결국에 클라우드 쪽은 대강 훑기만 하고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그런데 크롬이 미친 것인지 문제를 한글 번역으로 띄워주는 겁니다. 자동 번역 한 번도 써본 적 없는데 자동번역이 작동했어요. 몇 문제를 빼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데 새로고침 하거나 언어 자동번역 설정을 잘못 눌렀다가 아예 튕길까 봐 무서워서 울면서 시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제출하기 버튼이 재등록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는 바람에 제출 실패를 여러 번. 첫 번째 세션은 4초 남기고 간신히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2점 차로 과락. 심장이 떨리고 손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링크드인의 번역가들이 어째서 다들 기계번역에 적대적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심정으로 전을 부쳤습니다. 명절 준비는 해야 하는 거니까요.

 

다음날, 3차 응시를 위해서 트라도스를 켰습니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더군요. PDF 문서인 워크북을 워드로 열고 저장해서 트라도스에서 불러왔습니다. 걱정했는데 잘 열립니다. Note, 챕터 번호 이런 건 사랑스러운 트라도스가 막 자동으로 채워줍니다. 신이 납니다. 그런데, 낮에 시작했는데 새벽에 되어도 작업이 반의 반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그먼트“가 2,000개 정도 되는데 내 하루 번역 “단어 수”가 2,500개 정도니까 하루 이틀이면 다 되겠지! 하면서 자신있게 한줄 한줄 번역을 시작한 것이죠.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고 하지만 이건 많이 심한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야 제 어리석음을 깨닫고 울면서 고양이 뱃살을 주물렀습니다. 트라도스와 서먹해진 기분입니다. 이제 곧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음이 급해져서 일단 다 넘겨두고 두 번째 시험에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네 문제인가 다섯 문제인가가 나와서 절 충격에 밀어 넣었던 클라우드 챕터를 번역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 못하겠던 기계번역의 문구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면서 이렇게 써야 사용자가 알아먹지!!를 속으로 수십 번 외쳤습니다. 산업번역은 이렇게 하는 건가 봅니다. 임윤 님께서 제 질문에 산업 번역이 안 맞는 것 같다는 댓글을 다실 생각이었다고 하셨다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먹고살아야 하고, 먹여 살릴 고양이가 넷이나 있으며, 극심한 무기력증과 ADHD에 시달리는 회사 부적응자인 저에게 번역일은 마지막 동아줄입니다. 만약에 번역이 저에게 맞지 않는 썩은 동아줄이더라도 바닥에서 기는 것보다는 일단 올라갈 만큼은 올라가야 어디 높은 나무에라도 매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한산번 교재를 찬찬히 읽고 워크북을 읽고 안되면 추가 결제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응시에 도전했습니다. 그날따라 고양이들이 미쳐서 등 뒤에서 토하고 물그릇을 뒤엎는 통에 노트북을 들고 침대 위에 일어서서 시험을 치렀고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절로 만세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게 뭐라고... 그렇지만 올해 들어 처음 겪어보는 성취감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력서의 한 줄, 프로즈의 프로필에 글자가 하나 늘어났습니다.

이제 이번 주에 성문 기초를 두 번 더 보고, 트라도스 가이드 한번 더 보고 나면 레벨 2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레벨 2도 트라도스로 번역하면서 워크북을 읽을 생각이냐고 하신다면,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맘만 급해서 그냥 넘어갔던 번역어 등록이나 책갈피 같은 자잘하지만, 알아두면 속도가 빨라지는 기능들을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레벨 1에서 배운 것들을 체크하며 써 볼 생각입니다.

 

별것도 아닌 후기인데 글이 엄청 길어졌네요. 마음만은 번역가인데 현실은 영어 단어 하나하나 검색해 봐야 하고, 문장 하나의 구조가 이해가 되지 않아 해석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1세계 영어권 국가의 그네들에게 질투심을 불태우며 문법책을 펼칩니다. 그래도 이 순간을 지나서,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번역으로 먹고 사는 날이 올 거라 믿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아직 자격증 못 따신 분들께 제 아슬아슬한 실패담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걱정 말고 일단 도전하실 수 있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질문입니다.
  1. 이력서 첨삭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상태로 이력서를 몇 번 돌린 상태입니다. 이 경우 임윤 님의 이력서 첨삭 기회에 탈 수 있다면 넣을 수 있는 것은 다 넣은 새 이력서를 만드는 게 좋겠죠?
  2. 트라도스 자격증 후기에 쓴 것처럼 저는 트라도스로 문서를 번역하면서 공부를 했는데요. 플레이스홀더 연습문제라던가 트라도스 워크북, 마이크로소프트 스타일 가이드 등의 문서를 번역해 보는 식으로 공부에 적용해서 계속 사용해도 좋을까요? 혹시나 시간낭비가 아닐까 걱정되는 점이 있어서요.
 

그럼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는 하루 되세요!

 

 
수료 보리 보리 · 2024-02-13 17:58 · 조회 582
전체 9

  • 2024-02-13 19:38

    와 저도 자격증 딸 때 첫 번째 시도에서 자동번역 잘못 눌러서 너무 당황했어요ㅠㅠ
    다행히 주소 창의 버튼 누르니 새로고침 안되고 다시 영어로 보여주더군요.
    그나저나 자동 번역 한국어 상태 보면 번역가 없어질 날은 좀 멀었구나 싶긴 했습니다 ㅎㅅㅎ


    • 2024-02-13 19:50

      헉 으악새님도!!ㅜㅜ 진짜 자동번역에 뜨는 한국어뭌제 너무 처참하지 않나요ㅜㅜ 그나저나 그냥 언어 변경 버튼 눌러도 되는거였군요. 이렇게 하나 또 알아갑니다. 다음번 시험엔 당황하지 않고 눌러볼게요ㅎㅎ
      맞아요! 진짜 파*고나 구* 번역기가 자동 번역 아무리 잘 한다해도 역시 인간의 밥줄을 끊기에는 미약한 능력인 것 같습니다!


  • 2024-02-13 21:05

    합격 축하드려요! 저도 지금 2번 모두 29점 탈락이라 마지막 1회차 남겨두고 있어요ㅠ^트라도스로 직접 번역하며 공부하는 방법이 있었네요! 전 문단문단 긁어서 구글번역 돌리며 봤읍니다..저도 3회차에는 꼬옥,,성공하기를,,!!


    • 2024-02-13 21:27

      시간을 많이 잡아먹다보니 비효율적인 것 같기는 한데 저는 빽빽이가 익숙한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이렇게라도 하니까 좀 머릿속에 밀어넣어진 기분이었습니다ㅜ 1점 차라니깐 조금 더 꼼꼼하게 보시면 다음번엔 합격하실거에요! 파이팅입니당!!


  • 2024-02-14 21:39

    개인적으로는 워크북 출력해서 링제본 후 직접 트라도스로 해보면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글만 읽는 것 보다는 실습을 같이 해줘야 머리에 좀 남더라구요.
    제가 느끼기에 문제 유형 자체는 컴활 필기시험, 각종 자격증 필기시험 등등 문제은행 기출 유형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습니다.(정확하지 않음)
    Q 다음 서술 중 틀린것은?!
    1. ~~은 ~~할 수 있으며 ~~하다.
    2. **은 **할 수 없으며 **하다. (후략)
    Q. 소스 세그먼트를 타겟 세그먼트로 뭐시기 한 후, 세그먼트의 상태는?! or 화면의 모양과 일치하는 것은?!
    1. 초안 2. 번역됨 (후략) 등등등 뭐 이런류의 필기문제유형들요!

    레벨 1 워크북보면서 실습 1회 → 시험치기 → 합격했다면 레벨 2 워크북 공부하기 → 떨어졌다면 문제 유형을 익히고 다시 워크북 보면서 실습 1회 → 시험치기
    이렇게 하시면 아마 도움 되실듯합니다!

    레벨 1 워크북은 엄청 친절해서 따라하면서 공부하기 좋더라구요. 뭘 클릭해야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레벨 2 워크북은 '이제 이런건 설명안한다. 레벨1에서 다 알려줬지? 알거라 믿고 넘어가겠음ㅇㅇ' 이라는 느낌


    • 2024-02-14 21:41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못 드리고 그냥 개인 경험 공유만 하는 차원의 덧글이네요 ㅠㅠ; 그냥 이랬더라 정도로 참고만 하시길..


    • 2024-02-14 22:16

      앗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레벨 2를 도전하려면 (당연하지만) 레벨 1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겠군요. 안그래도 레벨 1 워크북 제본해왔어요. 임윤 님 트라도스 가이드도 좋지만 워크북이 엄청 자세해가지구 헷갈릴 때마다 찾아보면 좋겠더라구요. 레벨 1 워크북 실습 같이 하면서 꼭 다시 한번 복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습니다!


  • 2024-02-15 17:55

    제가 고시 8수하고 결국 못 붙은 주제에 드릴 말씀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윤대통령 9수를 전국민이 놀리는 걸 보니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소한 소프트웨어 사용법 익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고 따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효율이 극히 낮은 학습방법을 택하신 데 유감을 표합니다.

    해당 pdf는 트라도스에서 번역하면서 공부하기 좋은 파일 유형이 절대 아닙니다.
    트라도스는 원본 문서에서 텍스트만을 추출하는데
    사용방법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냥 스크린샷을 보면서 바로 따라했어야 합니다.
    입력하신 내용을 아무리 읽어봐도 pdf 원본과 비교대조하며 번역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스크린샷이 아닌 글자만 쳐다보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사용방법은 직접 워크북 작성자 의도대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이 워크북의 영어는 상당히 쉬운 문장구조와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어 원어민이 아닌 제2외국어로 영어를 익힌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한 빈도 높은 표준 단어만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안 읽히면 번역으로 채산성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산업'번역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영어든 영어 자체로 채산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안 가시면 해리포터 원문을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죄송하지만 본업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강력히 권고드립니다. 이력서 첨삭은 한참 나중에 열겠습니다.


    • 2024-02-15 22:22

      먼저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도 마지막에 쓴 방법이 굉장히 비효율적임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임윤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재 자체가 바로 읽히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아 트라도스로 직접 번역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생각한 시간 내에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교재를 끝까지 차분히 읽는 것을 미루게 되어 일종의 강제적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제로 출력한 워크북을 옆에 두고 같이 보면서 실습도 진행했고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지만 그것을 종이로 옮겨서 시험을 보게 되면 혼란스러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쓴 후기에 그것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임윤 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정 읽는 것이 힘들면 저렇게라도 해서 진도를 빼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취지가 더 컸음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사족이지만 저는 뇌종양 수술 후 일상으로의 회복이 쉽지 않은 후유증이 남아 본업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재택으로 근무하며 어느 정도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번역 일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요. 임윤 님의 권고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만 조금 더 뻔뻔하게 들러붙어 있겠습니다. 저 역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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