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이트 글 재업) 한국 번역회사 생존기 3 - 나를 샘플테스트에 붙여줄 기본 번역 표현

안녕하십니까, 파도에 휩쓸려 버둥거리는 물방개처럼 한국 번역 회사에서 어찌어찌 적응하고 있는 대원입니다.
물방개도 어지럽고 저도 어지럽고... 배워야 할 것은 많은데 일도 많아서 허우적거리며 서서히 감을 잡아가고 있어요.


다들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지난 글에 재수없으면 구정 연휴에도 출근해서 일해야 한다고 징징거린 것치곤
12시간씩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엔 넷플릭스 빈지워칭하다 심심하면 스쿼트-니업-푸시업-마운틴 클라이머 한 세트 씩 하는 흥겹고도 즐거운 명절을 보냈습니다.
다만 '저는' 명절에 출근해 울면서 일하는 것은 면했으나 제 사수가 바로 그저께 회사 시스템에 접속했던 흔적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읍니다. 저게 내 미래이군... 그는 명절에 재택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대체 프리랜서와 다른 것 무엇...? (작아서 귀여운)월급이 안정적으로 착착 나오는 것 정도일까요?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오늘은 배워두면 샘플 테스트에서 떨어지는 것을 크게 방지해 줄 기본 번역 표현을 가져왔습니다. 기본 번역 표현이라고 중급이나 심화를 기대하시면 아니되어요. 저것밖에 없습니다.
원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같이 가져오려고 했지만, 한번에 많이 공유해봤자 읽기도 벅차고 눈에 안 들어오며, 내 머리가 나빠진 것 같다는 착각만 괜히 들게 하니까 오늘은 이것까지만 글 찌겠습니다.


다음 번에 소개할 것이 맞춤법과 띄어쓰기지만 저는 맛춤뻡 파개자... 아니지, 맛춤뻡파개자와띠어쓰기파개자입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남이 빻아놓은 것을 고칠 니가 빻으면 어떡하냐'며 알려준 것을 공유할 것이예요.


아래는 기본 번역 표현 예시입니다. 설명과 예시를 실미도 식으로(?) 알아듣기 쉽게 수정했어요.




※ 기본적인 번역 표현


1. 사람의 동작은 주어를 생략하고 능동형으로 번역합니다.
ex. 사용자는 ESC 키를 누르십시오. (X)
ESC 키를 누르십시오. (O)


2. 동작의 주체가 무생물인 경우 주어를 생략하고 피동형으로 번역합니다.
ex. 시스템이 파일을 자동 저장합니다. (X)
시스템에 파일이 자동 저장됩니다. (O)


3. 절차별 단계를 설명할 때 명령형을 피합니다. 설명서를 읽는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짧은 문장으로 계속해서 명령조로 지시하는 게 거슬릴 수 있단 걸 알게 됩니다.
ex. 플러그를 연결하십시오. 전면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켜십시오. 모니터를 확인하십시오. (X)
플러그를 연결합니다. 전면 버튼을 눌러 전원을 켭니다. 모니터를 확인합니다. (O)


4. 타동사의 경우 '~시킨다'는 표현을 지양합니다. 피동형도 가급적 피합니다.
ex. 이 파일 형식은 오류를 발생시킵니다. (X)
이 파일 형식은 오류를 발생합니다. (O)
사람들에게 '문뻡파개자'라고 불리는 (X)
사람들이 '문뻡파개자'라고 부르는 (O)


5. 누구나 알고 있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문장을 간결하게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중 부정을 쓴다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으며, 쉼표를 이렇게, 자주 찍으면, 읽는 사람이,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여러모로 실패했습니다.
ex. 이중 부정을 쓰면 읽는 사람이 혼란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X)
이중 부정을 쓰면 읽는 사람이 혼란스럽습니다. (O)


6. '의'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영미도 대장님도 오프라인 강의 때 강조하셨지요.
ex. 러시아의 최초의 게임 (X)
러시아 최초의 게임 (O)


7. 완료, 미래형 등 영문법식 시제를 지양합니다. 한국어는 시제가 다양하지 않아요.
ex.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샘플 테스트를 빻아왔었습니다. (X)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샘플 테스트를 빻았습니다. (O)
이제 패치가 진행될 것입니다. (X)
이제 패치가 진행됩니다. (O)




여기까지입니다. 뭐 이런 당연한 걸 공유하냐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특히 매뉴얼 번역할 때 명령어 쓰지 말라는 부분에서 이걸 진작 알았으면 샘플 테스트에서 허망하게 떨어지는 걸 줄일 수 있을텐데 싶더라고요.


물론 앞으로 제가 공유해드릴 맞춤법 등도 그냥 검색하거나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나오는 것들이긴 하지만, 번역가가 그럴 시간이 어딨겠읍니까. 게다가 한국어는 법칙 적용 예외인 맞춤법도 있어 따로 공부하기도 복잡합니다. 아마 저는 헬반도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한국어 쳐다도 안 봤을 것이예요. 언어 수요도 옆 나라들에 비해 많지 않은데 문법까지 어렵고 맞춤법에 띄어쓰기 법칙까지 변칙적이라니... 혼돈 파개 망가...


여튼 번역가는 바쁘니까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자주 틀리는/헷갈리는 것만 싹 숙지하고 일을 맡아서 하면 상대적으로 덜 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읍니다. 대원님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으면 좋겠네요.


다음 생존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읍니다. 그럼 저는 다시 산더미처럼 밀린 업무 메일 읽으러 이만 총총.
번역가 beyond beyond · 2019-04-10 10:01 · 조회 5193
전체 6

  • 2019-04-10 18:13

    후기에 이렇게 정성가득한 정보글까지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 2019-04-11 11:47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9-08-21 11:11

    세상에 비욘드님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ㅠ


  • 2019-12-16 12:48

    우와 완전꿀팁이네요. 감사합니다


  • 2020-07-14 16:31

    처음부터 정독중입니다 🙂 감사합니다!


  • 2020-10-13 18:35

    재미있고 유용한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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