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번역을 하려면 역시 게임을 많이 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제 상황을 말하자면

이력서 한창 돌리던 극초반에 테스트 합격한 에이전시 + 임윤님께서 저를 추천해 주신 덕분에 속하게 된 에이전시(감사합니다ㅠㅠ) 이렇게 두 군데가 저랑 현재 제일 많이 거래하는 게임 에이전시입니다

그리고 마케팅 관련 프로젝트 진행하는 에이전시에서도 작년에 컨택을 받아서 올해엔 전에 다니던 직장의 두 배가 넘는 돈이 통장에 찍히게 되었어요. 이제는 산번혁이라고 줄여 불러야 하나요...? 산번혁 찬양하라.

물론 원래 다니던 직장 월급이 워낙 짜기도 했고, 두 달간 일한 걸 한 번에 지급받은 영향이 크지만 저한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

암튼 요즘은 이렇게 게임, 마케팅 번역 위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게임 번역 일을 진행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팬심이 있는 게임의 번역을 맡게 되기도 해서 너무 신기하고 즐겁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맡았던, 그리고 맡을 뻔했던 프로젝트 2개 때문에 기가 좀 많이 죽어부럿습니다...

 

1월에는 3만 자 넘는 게임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지금껏 맡았던 프로젝트 중 가장 분량이 컸던지라 좀 긴장되긴 했는데 게임 번역을 몇 번이고 무난하게 진행해 오면서 별 탈도 없었고, 이전에 동일한 게임의 1만 자 넘는 번역을 맡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이게 전쟁 관련 게임이라서, 시나리오 부분은 나름 괜찮았는데 캐릭터들이 무전을 할 때 나오는 대사 부분에서 무전 용어나 은어 같은 게 많더라구요. 이걸 대체 뭐라고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이 많았어요

검색해서 어찌저찌 찾아서 번역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 제가 스케줄 관리를 개떡같이 하는 바람에 마감 시간을 몇 시간 넘긴 상태여서 마음은 급한데 아무리 검색해 봐도 나오질 않으니 진짜 멘붕이 와버렸습니다...

이 프로젝트 끝내고 나서 몇 주 뒤에 배그를 해 본 사람이랑 대화해 보니까 저한테는 생소한 용어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더라고요 ㅋㅋㅋ

여기서 1차로 깨달음을 얻고...

 

며칠 전에는 11만 자 넘는 게임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아니 맡을 뻔했습니다...

이 게임은 세계관 설정이 워낙 방대해서 에이전시에서 레퍼런스 파일을 10개 넘게 보내 주고, 스팀 키까지 줬어요

전 몰랐는데 이렇게 세계관과 게임을 먼저 이해하는 게 필수인 프로젝트는 번역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familiarization이라고, 일단 해당 게임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러한 레퍼런스를 읽는 작업에도 페이를 주는 절차가 있더라고요

이 familiarization이 1시간 걸릴 거라고 하면서 에이전시 측에서 이메일을 보냈는데 분량을 보면 도저히 1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어서 ㅋㅋ 주말 내내 읽어야지 했는데... 주말엔 또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바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레퍼런스 파일을 모두 읽지도 못한 채 번역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메모큐에서 프로젝트를 여니까 정신이 상당히 아득해지고 말았습니다

 

부끄럽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소한 용어가 나오면 그때그때 레퍼런스를 보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갖고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전에 맡았던 것과 상당히 다른...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표현이 많았다고 해야 할까요...?

배경이 중세 판타지 느낌이라서 그런지 자체적으로 지어낸 단어도 좀 있는 것 같고, 문체도 제 수준에 맞지 않게 어렵고, 레퍼런스 파일을 숙지하지도 못한 저로서는 이대로 번역을 진행해 봤자 오역 투성이가 돼 버릴 것 같고...

이제까지 프로젝트에서 중도 하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떡해야 하나 싶고, 여기서 빠지면 엄청 민폐일 것 같지만 진짜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엄청 고민하다가, 산번혁 질문게시판에서 찾아 보니 프로젝트 중도 하차하신 분도 있다고 해서, 프로젝트 시작한 지 하루만에 PM 분한테 제가 역량이 안 돼서 이 프로젝트 진행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_ㅠ 다음 날엔 아쉽다고 다음 프로젝트에서 보자고 답장을 받았구요...

 

요때까지 맡아 본 프로젝트들은 문장이 아무리 길어 봤자 전반적으로 캐주얼한 느낌이었고, 검색 결과가 안 나온다 해도 인내심 갖고 계속 하다 보면 그럭저럭 괜찮게 해 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막막한 경험은 처음이었네요.....

사실 제목을 저렇게 써 놓긴 했지만, 두 번째 사례의 경우는 제 게임 경험 부족보다는 영어 실력 문제 + 레퍼런스 숙지 문제가 크겠죠 흑흑

근데 이것도 중세 판타지 장르에 익숙해져 있으면 공부를 더 한 다음 더욱 센스 있게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요즘은 진짜 원서 읽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ㅜㅠ

산번혁 게시판에서 회원님들이 회화는 거의 쓸 일 없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는 작년에 은근 화상채팅할 일이 있었어서 최근에는 유치원생 실력도 안 되는 현 상황을 탈피하고자 회화 앱까지 결제했네요..ㅎㅎ... 배워 둬서 나쁠 것 없으니까요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구나 싶어서 막막합니다... 그래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발전이 있는... 거겠죠?
ABC 후눈 후눈 · 2023-02-10 10:51 · 조회 1122
전체 3

  • 2023-02-12 10:02

    공감이에요. 저도 게임 번역을 꽤 메인 필드로 밀고 있는데... 게임도 장르가 다양하니까 자주 접한 게임이랑, 그냥 이런 게임이 있구나 알고 있었던 정도의 게임이랑 확실히 결과물이 다르더라고요.. 장르도 장르지만 영어 실력의 문제겠죠.. ㅎㅎ.. 범죄 게임 일 했을 때는 매 줄마다 나오는 슬랭 + 남미계, 이탈리아계 임을 표현하려고 의도적으로 틀리게 쓴 문장 같은 걸 보면 일단 머리 아프더라고요. 범죄 관련 미드라도 많이 보면 좀 익숙해질까 싶고 그렇습니다.


  • 2023-02-27 17:02

    안녕하세요. 저는 진입 초반 시기 초미니 게임 호떡 하나 체험한 이후로는 절대 맡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를 해보지 못하고 산 인생이라 극한의 어려움을 느껴버렸...ㅎㅎ 게임 번역 하시는 분들 너무 대단하신 것 같아요.


  • 2023-05-08 01:35

    게임 번역으로 부업을 해보는게 꿈인데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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